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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승 칼럼 Travel Column

다시 찾는 산티아고 길(CAMINO DE SANTIAGO)

· 작성자李基承 · 등록일2018-10-26 · 조회123

그 옛날 산티아고에 도착한 순례객은 ‘콤포스텔라’ 라고 하는 순례 완료증을 교부받고 스페인 왕립 숙소(HOSTAL DE REYES CATOLICOS)에서 1박을 허락 받았다. 산티아고 대성당은 다음날 정오미사에서 이들의 성명과 출신지를 일일이 호명하며 축원하였다. 성당 축원 전통은 지금도 계속되나 왕립 숙소는 스페인 최고의 5성급 국영 호텔로 거듭나 일반 순례객은 넘볼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웬만한 VIP도 6개월 전 예약이 쉽지 않다고 한다.

콤포스텔라는 별의 들판(COMPO=FIELD, STELA=STAR)이란 뜻이다. 9세기 초 한 수도승이 스페인 서북부의 언덕에서 큰 별빛에 비친 무덤을 발견하였다. 스페인에서 전도하던 예수그리스도의 친동생 야고보의 유해로 밝혀지며 그 옆에 예배당이 세워진다. 聖 야고보의 스페인語표기가 SANTIAGO이다. 이후 스페인 회복 전투마다 야고보의 영이 나타나 이슬람군 격퇴를 도와준다는 전설과 함께 성당 참배와 헌금이 쇄도되어 산티아고는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중세 기독교 3대 순례지로 등장하였다. 12세기 예루살렘이 이슬람에 넘어가고 로마가 부와 권력의 도시로 변형되며 기독교 대중의 순례는 산티아고로 몰리게 된다. 1140년 한 해에만 50만 명의 순례 기록이 남아 있다. 산티아고 순례는 16,7세기 종교전쟁의 와중에 실전되었다가 1982년 요한 바오로 교황의 대성당 참배를 계기로 산티아고 순례는 세계인의 행사로 거듭나게 된다. 연간 순례객(완료증 기준)이 1985년 690명에서 점증하며 1990년 5천, 2000년 5만, 2017년에는 30만명을 돌파하였다,

중세의 순례자들은 독실한 중년 기독교도였다. 요즈음엔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종교, 직업과 연령대의 순례객들이 찾아오며 여행 목적도 내적 성찰의 기회에서 액티브 레저 등으로 다양화되었다. 한국인 순례객이 작년에 4,000명을 넘었다고 한다. 非 유럽권 국가로는 미국에 이어 2위이다.
2008년에 첫 매스컴을 탄 지 10년 만에 많은 한국 사람이 이렇게 큰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우리 사회의 쏠림 현상 중의 하나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때마침 불기 시작한 걷기 운동, 힐링 열기와 해외여행 붐이 맞물려 산티아고 길이 적합한 대안으로 나선 것 같다.

필자는 국내 기업의 구라파 책임을 맡던 80년대 말 산티아고 길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며 관심을 갖게 되어 순례길 완주를 은퇴 후 버킷리스트의 선두에 올려 놓았었다. 막상 은퇴 시점에는 누적된 무릎 부상으로 도보여행의 꿈을 접어야 했다. 대신 2006년 렌터카로 아내와 함께 피레네산맥 프랑스 쪽의 아름다운 마을 쌩쟝 삐에드뽀르에서 산티아고까지 프랑스길(CAMINO FRANCES; 산티아고에 이르는 여러 코스 중 프랑스인들의 주요 루트) 800km를 아내와 함께 렌터카로 달렸다. 고독-극기-성찰의 기회는 아니었지만 BURGOS, LEON 등 경유지의 찬란한 문화역사, 풍경, 향토 미식에 흠뻑 매료되었다. 꼼포스텔라 사무국에 들렸지만 물론 완료증은 받지 못하였고 한국인 순례자가 2004년 4명 2005년 15명이었다는 통계만 확인하였다. 그 후 몇 년 간 北路(C- DEL NORTE), 포르투갈길(C- PORTUGUES) 銀路(C- DE PLATA) 등 여타 코스들을 드라이브하며 OVIEDO, LISBON, PORTO, SALAMANCA 등의 주옥 같은 문화유산들을 섭렵하였다

산티아고 길에 관심이 커도 필자처럼 걷기 힘든 분들을 위해 尙美會는 2010년에 프랑스길을 리무진버스로 답파하는 산티아고 코스를 소개하여 대환영을 받은 바 있다. 내년 초에는 내용을 한층 업그레이드하여 프랑스 길과 포르투갈 길을 연결하는 코스를 시도할 계획이다.


<尙美會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