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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승 칼럼 Travel Column

유네스코 문화유산 유감

· 작성자李基承 · 등록일2017-08-04 · 조회296

여행 길잡이를 하다 보면 가끔 받는 질문이 “몇 나라를 가보셨어요?”이다. 글쎄요 하며 되는대로 대답하지만, 방문 국가 수를 세어본 적은 없다. 국경을 기준으로 여행을 계획하여 본 적도 없다.

그런데 방문일지를 꼭꼭 기록하는 나의 버킷리스트는 따로 있다. 世界文化遺産(UNESCO WORLD HERITAGE; 이하 WH), 그 중에서도 특히 문화유산(CULTURAL HERITAGE)부문이다.

역사문화의 애호가로서 필자는 1970년대 유네스코의 문화유적보존 활동을 접하고 크게 공감하였다. 프로젝트가 탄력을 받으며 1978년에 12곳의 첫 번째 리스트가 작성되었고, 그 후 매년 교과서 급의 대표적인 유적들이 본격 추가되었다. 언젠가는 저 귀중한 장소를 모두 답사해 보기로 마음먹었고, 당시 주머니 사정으로는 만만치 않던 액수를 기부도 하였다.

은퇴하며 여유시간이 생긴 2000년도에 WH리스트를 헤아려보니 총 599 곳, 자연유산을 제외한 문화유산이 474곳이었다. 5년간 약 240곳의 WH를 방문하였다. 그 후로 尙美會 길잡이를 맡으며 12년간 60여 곳을 추가했다. 2000년 리스트 기준으로는 3분의 2 가까이 답사해본 셈이다.

한편 WH 리스트는 매년 30곳 정도 신규등재가 계속되며 2017년 6월 현재의 1,052 곳(이 중 문화유산 837)으로 늘었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등재된 WH를 방문해보면 어떻게 이런 곳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는지 수긍이 어려운 곳이 생기며 시간이 갈수록 이런 경향이 심해지고 있다. 그 이유는 국제 정치에서의 평등주의 논리에 있고 이것이 내 첫 번째 유감이다.

WH 프로그램 성공과 함께 유산목록에 대한 세계 각국의 비판 여론도 높아져 왔다. 예컨대, 특정 종교나 문화에의 ‘엘리트주의’ 편향으로 소수 토착민의 전통문화가 무시되었고, 유럽 및 중국 등 강대국가 편중이 심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1994년 유네스코는 새로운 국제 전략을 선포하면서 유산의 개념을 ‘자연과 인간의 공존’ ‘다른 문명 간의 조화와 교류’ ‘인류의 창의성 인정’ 등으로 확장하였고 이 후 10년간 세 차례에 걸쳐 WH 선정방식과 기구조직을 개정하였다.

현재 유산협약 참여국가도 191개국으로 늘었다. 이 회원국들이 모두 지명도 제고와 관광 고용증대를 기대하며 자국 문화재의 UH 잠재목록을 제출 중이다. 회원국 총회(GENERAL ASSEMBLY)에서 선임된 21개국 대표가 4년 임기의 중앙위원회(CENTRAL COMMITTEE) 임원을 돌려 맡으며 해마다 추가유산을 심사한다. FIFA 출전권처럼 중앙위원회원 자격에도 지역별 T/O(예: 아시아 4/21)가 적용된다. 현임 21개 위원국 중 강대국급인 G20 멤버는 2개국, 선진국 급인 OECD 멤버는 4개국이다.

이 중 G20과 OECD를 겸한 선진강국은 대한민국 한 곳뿐일 정도로 평등화가 진행되었다. 평등한 국가들이 평등한 기준으로 세계 유산을 심사한다.

WH 선발이 추첨제로 바뀐 것은 아니고 최근 등재 유산 중에도 보석 같은 곳이 있기는 하나, 2000년대에는 전 세기와는 선발 기준이 달라졌고 나의 버킷리스트는 2000년도 판으로 동결되었다는 점을 해명하는 바이다.

두 번째 유감은 대 UH 테러이다. 아프간의 바미안 석굴 훼손 이래 시리아와 이라크의 문화재가 종교 광신세력의 조직적인 공격을 받았고 여타 중동지역, 또 나머지 후진국의 유산들도 여러 면에서 불안한 상황에 놓여 있다.

세 번째 유감은 우리 주변 사람들의 무관심이다. 지금도 필자는 尙美會 여행마다 UH 방문을 적극 포함시킨다. 10박 일정이라면 6~9곳 들른다. 여행객들의 반응을 보면 UH가 그리 인기 볼거리는 아닌 것 같다. 과거 한때의 기술과 예술의 금자탑이었건만 현대건축물에 비해 초라해 보이기 일쑤이므로 배경설명 없이는 훌쩍 지나쳐 버리기 쉽다. 그래도 정성을 들여 홍보 선전을 열심히 하면 꽤 들 관심들을 보이시기에 기획자로서의 보람을 느끼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