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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굴렘 만화축제의 승리자들

· 작성자愼鏞碩 · 등록일2014-02-20 · 조회466

중부 프랑스에 위치한 앙굴렘이라는 도시를 처음 찾았던 것은 파리 특파원 시절인 1970년대 초였다. 유명한 꼬냑 생산지인 꼬냑과 자르냑에 취재차 가는 길에 앙굴렘을 경유했던 것이다. 자르냑과 꼬냑은 마을규모의 소도시였지만 레미·마르탱, 꺄뮤, 헤네시, 마르텔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꼬냑 회사들이 자리 잡고 있어 부유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앙굴렘은 인구 10여만 명의 프랑스 기준으로는 비교적 큰 도시였지만 음산하고 버려진 도시 같았다. 이렇다 할 기업들이 없는 도시여서 인구가 줄어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앙굴렘에서 처음으로 만화축제가 열린 것은 1974년도였다. 전통적으로 제지산업이 발달해있던 앙굴렘에서 1972년 한 시의원이 만화가와 출판업자를 초청하여 만화 발표회를 열면서 주목을 받았고 뒤이어 앙굴렘시가 만화를 도시 브랜드화 한다는 전략으로 예산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만화축제 초기에는 지역주민들과 만화 애호가들이 일 년에 한 번씩 모여 즐기던 행사였으나 1980년 들어 축제 출품작들이 미국시장에 수출되어 호평을 받으면서 앙굴렘 축제도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어서 이 지역 출신인 프랑수아·미테랑 전직 대통령 시절 정부의 대중문화 지원에 힘입어 칸 영화제와 함께 프랑스를 대표하는 국제 문화행사로 자리 잡았다.

앙굴렘을 다시 찾은 것은 1970년대 말 서울에서 온 만화가와 출판업자 친지들과 함께였다. 1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앙굴렘은 도시 전체가 활기찬 모습이었고 오래된 건물들의 벽면에는 다양한 그림들이 다채로운 색채로 그려져 있어 눈길을 끌었다. 프랑스 각지에서는 물론 세계 도처에서 몰려든 만화 관계자들과 애호가들로 도시가 붐볐다. 한 시의원의 발상으로 만화축제를 시작한 소박하던 도시 앙굴렘의 활기찬 모습을 보면서 도시 브랜드를 만화와 연결시켜 성공한 현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9년 당시 부천시장으로 있던 원혜영 국회의원이 부천 만화축제를 구상하면서 앙굴렘에 가서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고 했다. 오늘날 경기도 부천시가 만화산업의 중심도시가 된 것은 원혜영 의원의 선경지명과 앞서나간 앙굴렘 만화축제의 덕분일 것이다.

앙굴렘 만화축제를 통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준비해온 사람은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이었다. 장관 취임 초부터 위안부 할머니들이 정말로 바라는 것이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임으로 국제사회의 여론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만화라는 매체가 적격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조 장관은 지난 10개월 동안 19명의 작가와 행사를 준비하면서 앙굴렘에서의 특별기획전 「지지 않는 별」을 기획하여 만화 20편과 애니메이션 4편을 포함시켰다. 앙굴렘 축제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계속해온 만화대국 일본이 크게 반발한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일본정부는 프랑스 외무성과 문화성을 통해서 또한 앙굴렘 축제조직위원회에 항의하고 압력을 행사했으나 허사로 끝나고 말았다. 만화업계에서도 조직위에 한국에서 준비한 위안부 주제 전시를 취소시켜달라고 제의하고 강제연행은 없었다는 주제의 일본 부스를 급조했으나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조직위원회에서는 한국의 기획전을 취소하는 대신 위안부 강제동원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일본의 전시 부스 철거를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앙굴렘 국제만화축제의 프랑크·봉두 조직위원장은 『한국의 위안부 전시회는 그동안 은폐되었던 역사를 알리는 것으로 정치적인 이슈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일본이 계획한 전시는 역사를 왜곡한 것이어서 정치적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일본 측 주장을 일축했다. 봉두 위원장은 이어서 『위안부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전쟁 당시 여성에 대한 폭력행사』라면서 『우리는 전쟁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이번 전시회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앙굴렘 만화축제가 시작된 지 40년 만에 프랑스 땅에서 벌어진 이웃 나라 일본과의 대결은 아직도 과거의 상처를 치유 못하고 있는 한·일 간의 불화를 국제사회에 또 한 번 드러낸 셈이다. 2만여 명 이상이 한국전시회를 관람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인식했다고 하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일본정부를 대표하는 사람이 진심어린 사죄를 할 것 같지는 않아서 답답하다. 이 같은 시점에서 만화라는 매체를 통해 앙굴렘 축제에서 위안부 문제를 고발한 조윤선 장관과 이를 긍정적으로 수용한 조직위원회 봉두 위원장의 아이디어와 결단이 돋보이는 것이다.

<尙美會 대표>